동맹의 해체인가, 전략적 재편인가
핵심 요약 (Executive Summary)
2026년 4월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1949년 창설 이래 가장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월 28일 개시된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 작전인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기점으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의 참전 거부를 명분으로 전례 없는 ‘나토 탈퇴’를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선의 병참 고갈과 러시아의 잠재적 하이브리드 위협이 겹치며 동맹의 방어 체계는 마비 수준에 이르렀다. 나토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1. 새로운 화약고의 부상과 대서양 동맹의 명분적 단절
NATO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호르무즈 봉쇄와 경제 충격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로 시작된 이란 본토 폭격은 글로벌 에너지 물류의 척추인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봉쇄를 초래했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이 막히면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는 물론 비료, 알루미늄, 그리고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헬륨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폭등했다. 이러한 자원 쇼크는 전 세계적인 경제 마비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호주의 앤서니 알바니즈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을 호소할 만큼 기초적인 국가 인프라 가동조차 위협받는 실정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해군력을 투입해 해협을 무력으로 개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참고 자료]Foreign Policy: Trump Mulls Pulling U.S. Out of NATO
유럽의 참전 거부와 ‘미국의 전쟁’에 대한 전략적 거리두기
미국의 강경한 파병 요구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단호한 ‘거부’였다. 유럽 국가들이 참전을 기피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번 전쟁이 NATO 조약 제5조(집단방위)의 발동 요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이 미국을 선제 공격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유럽이 참전할 경우 이란의 직접적인 미사일 및 테러 보복 대상이 될 위험이 농후하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작전을 “2003년 이라크 침공보다 훨씬 치명적 결과를 낳을 무모한 선택”이라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국방장관은 이 전쟁을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규정하며 미군기의 자국 기지 및 영공 통과를 전면 차단했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역시 시칠리아의 시고넬라(Sigonella) 공군기지 사용을 의회 승인 사안으로 묶어버렸고,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며 끌려가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는 미국의 독단적 무력 투사에 동맹의 인프라와 피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유럽의 명확한 선언이다.
[참고 자료]TIME: Will the Strait of Hormuz Sink NATO?
2. 가중되는 NATO의 고민: 거래적 압박과 외교 수뇌부의 파상 공세
트럼프의 노골적 폄하와 동맹국의 안보 가치 부정
동맹국의 군사적 불참에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은 NATO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NATO를 “종이 호랑이(Paper Tiger)”라 지칭하며, 이란 전쟁 종료 직후 미국의 회원국 지위를 ‘전면적으로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동맹국의 국방력을 깎아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영국을 향해 “작동하는 항공모함조차 없는 낡은 해군”이라고 조롱하는 한편, 스타머 총리가 국방 대신 “에너지 가격만 폭등시키는 비싼 풍력 발전기(costly windmills)”에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미국의 충성심을 보여준 테스트”로 규정하며, 보답하지 않는 동맹은 버릴 수 있다는 극단적 거래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참고 자료]CNBC: Trump says he’s considering pulling U.S. out of ‘paper tiger’ NATO
외교·국방 수뇌부의 일사불란한 압박 작전
대통령의 강성 기조에 발맞춰 미국 외교안보 라인 역시 유럽을 향해 동시다발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매슈 휘태커 주나토 대사는 “미국은 ‘행동’의 문화를 가졌지만, 유럽은 끝없는 ‘논의’의 문화에 빠져 있다”며 유럽의 무임승차론을 꼬집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자산에 기생할 뿐, 실질적인 위험 분담은 기피하고 있다며 제5조(집단방위)의 자동 발동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나아가 파리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거친 언쟁을 벌인 끝에, “미국이 기지 사용조차 거부당하는 단방향(one-way street) 동맹이라면 그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대서양 동맹의 근본적 개편을 예고했다.
[참고 자료]Reuters: Trump’s anger over Iran thrusts NATO into fresh crisis
3. 나토 탈퇴의 법적 제약과 헌법적 충돌이라는 NATO의 고민
국방수권법(NDAA) 제1250A조의 절차적 방어 기제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의 수사(Rhetoric)를 넘어 실제로 미국을 NATO에서 탈퇴시킬 수 있을까? 법률적으로는 매우 험난하다. 2023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의회를 통과한 국방수권법(NDAA) 제1250A조는 대통령이 상원 3분의 2의 찬성이나 별도의 의회 법률 제정 없이는 일방적으로 NATO 조약을 폐기하거나 탈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또한 이 절차를 우회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행위조차 차단해 두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법안의 공동 발의자가 현재 트럼프의 입을 대변하고 있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라는 사실이다.
[참고 자료]한겨레: 트럼프, 나토 ‘맘대로 탈퇴’ 못 한다…그런데도 밀어붙인다면
군 통수권(Article II)을 앞세운 우회 돌파와 형해화 시나리오
그러나 법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의회의 통제를 무력화할 우회로를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일라리아 디 조이아(Ilaria Di Gioia) 등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헌법 제2조에 명시된 ‘군 통수권자’로서의 포괄적 외교 정책 권한을 내세워, 국방수권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헌법적 충돌을 불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대만과의 상호방위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판례가 이 주장의 근거가 된다.
설령 긴 법적 소송전과 나토 규약상의 ‘1년 유예 기간’에 발목이 잡혀 공식적인 탈퇴가 지연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미국의 물리적 탈퇴 여부와 무관하게, 군사 지원을 통제하는 총사령관으로서 트럼프가 동맹국 방어에 자산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NATO의 핵심 가치인 ‘상호 억제력’은 즉각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TIME: Trump Threatens to Pull U.S. Out of NATO Amid Fallout Over Iran War. Can He Legally Do That?
4. 동부 전선에서의 고민: 우크라이나 교착과 하이브리드 위협
병참 고갈의 늪과 유럽 내부의 이념적 균열
서방이 중동 문제로 내홍을 겪는 사이, 4년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선은 유럽에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최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핵심인 루한스크를 99% 이상 장악했다고 발표하며 전황의 우위를 과시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원에 지친 유럽 내부에서는 정치적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영국의 우파 정당인 개혁당(Reform UK) 소속 존 클라크(John Clark) 후보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NATO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며 러시아를 자극한 탓”이라며 푸틴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한 사례는, 전쟁 장기화가 동맹국 내부의 이념적 분열과 친(親)러시아 여론을 어떻게 증폭시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참고 자료]BBC: Reform Senedd candidate blamed Nato for Ukraine war
푸틴의 과대망상과 에스토니아 전선 확대 가능성
그렇다고 러시아의 상황이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4년간의 전쟁으로 무려 130만 명 이상의 끔찍한 사상자를 냈으며, 현재도 매일 약 1,000명의 병력이 희생되고 있다. 과거 푸틴을 열렬히 지지했던 극우 민족주의 블로거 일리야 레메슬로(Ilya Remeslo)조차 “푸틴은 전범이며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반기를 들 만큼 내부 엘리트층의 동요가 감지된다.
문제는 정치적 궁지에 몰린 푸틴의 ‘과대망상(delusions)’이다. 알렉산더 모틸(Alexander J. Motyl) 교수는 침체된 국내 여론을 돌리기 위해 푸틴이 에스토니아 북동부의 러시아계 주민 ‘해방’을 명분으로 가짜 저항군을 동원한 하이브리드 침공을 감행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조약 제5조 발동을 꺼리는 미국의 태도를 간파한 푸틴이 NATO의 방어 의지를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치명적인 도발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The Hill: Putin’s delusions in Ukraine could rouse him to take on NATO
역발상: 우크라이나, NATO의 ‘재창조(Reinvention)’ 파트너로 부상
미국의 이탈 우려 속에서,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이 위기를 오히려 동맹 체질 개선의 기회로 본다. 알리오나 헤트만추크(Alyona Getmanchuk) 나토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작금의 혼란이 “NATO 붕괴가 아닌, 더 혁신적이고 치명적인 군대로 거듭나는 재창조의 계기”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수년간 최전선에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술을 체득하고 독자적인 무기 체계를 발전시킨 우크라이나가, 실전 감각이 둔화된 NATO 군에 필수적인 비대칭 전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의 피에르 방디에(Pierre Vandier) 제독이 이끄는 나토 최고위급 대표단이 키이우를 방문해 나토-우크라이나 공동분석훈련교육센터(JATEC)의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것은 이러한 군사적 연대가 미국의 정치적 수사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참고 자료]Politico: It’s time to reinvent NATO, says Ukraine’s envoy to the alliance
5. 구조적 딜레마를 넘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
방위비 20% 폭증과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
미국의 변덕스러운 안보 공약에 직면한 유럽은 뼈를 깎는 ‘독자 생존’에 돌입했다. 프랑수아 르쿠앙트르(Francois Lecointre) 전 프랑스 합참의장의 “미국 없는 NATO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닌 현실이다. 유럽 연합 회원국들은 2024년과 2025년 단 2년 만에 국방 예산을 20%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액했으며, 독자적인 군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유럽 방위산업 전략(EDIS)’을 본궤도에 올렸다.
뿐만 아니라 안보의 핵심인 희귀 자원 공급망에서도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광범위한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도쿄에서 만나 남프랑스에 희토류 정제 시설 투자를 단행하기로 합의한 것은, 동맹의 신뢰가 무너진 시대에 첨단 자산의 통제권을 스스로 쥐겠다는 강력한 경제 안보 전략의 일환이다.
상호 보완성의 역설: 앵글로-프렌치 핵 억제력과 동맹의 성찰
재래식 전력의 자립을 넘어, 유럽 안보의 최후 보루인 ‘핵우산’의 주체 역시 미국에서 유럽 본토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가 무력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유럽 내 유일한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핵전력을 전 유럽의 억제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이른바 ‘앵글로-프렌치 핵 억제력’ 구상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슈(Władysław Kosiniak-Kamysz) 국방장관은 “미국 없는 NATO도 없지만, 동맹 없는 강한 미국 역시 불가능하다”며 일방주의적 태도에 일침을 가했고, 에스토니아의 한노 페브쿠르(Hanno Pevkur) 국방장관 역시 “지금은 다리를 부술 때가 아니라 놓아야 할 때”라며 무너져가는 대서양 거버넌스의 복원을 촉구했다.
6. 결론: 청구서에 의해 쓰여지는 동맹의 새로운 질서
마르크 뤼테(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이 사태 수습을 위해 워싱턴으로 긴급 타진하고, 핀란드의 알렉산데르 스투브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건설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영국 등 제3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타개를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 등 외교적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미 깨져버린 동맹의 상호 신뢰를 단기간에 복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26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념과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맹신하던 냉전기의 이상적인 안보 공동체가 아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던져진 ‘방위비 5% 청구서’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장(Battlefield)을 두고 엇갈리는 철저한 손익계산서만이 오갈 뿐이다.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경찰로서 안보 공공재를 무상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유럽 또한 미국의 파괴적인 고립주의 리스크에 자국의 명운을 맹목적으로 맡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공식적인 NATO의 붕괴나 탈퇴가 당장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동맹은 이미 철저히 개별 국가의 ‘거래적 이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해체되는 느슨한 연합체로 퇴조했다. 대서양 안보 질서는 80년 만에 처음으로 ‘상호 헌신’이 아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잔인한 현실주의 무대로 재편되고 있다.
작성자 : 국제외교팀 수석에디터
발행일 : 2026년 4월 3일
